*시대적 배경
1) 14세기 봉건사회에서는 농노들은 일을 하고 영주는 농노들을 지켜줬다.
농노들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는 없었고 태어날때부터 신분과 부와 빈곤은 정해져 있는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빈곤은 변경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사회문제로 취급이 되지 않았다.
2) 하지만 초기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봉건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농경지가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전환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무역을 활발히 하면서 국제무역이 성장, 자연스럽게 중상주의가 등장해서 수출 증대를 위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려먹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고 때문에 농민들이 해방된다.
3) 그런데 자연재해가 자꾸 일어난다. 1315년 대홍수와 더불어 1348년-1349년 흑사병으로 인구의 30~45%가 사망한다. 그래서 노동력 부족사태가 발생하고, 근로 빈민들은 임금을 2배정도 올리라고 배째라고 한다.
그래서 지주 입장에서는 임금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에 법을 제정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1349년 노동자법이 제정된다.
4)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농노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고 거주이동권리도 갖게 되지만 반대로 질병이나 노령 직면 시 영주들에게 도움을 받을 곳이 부재하게 된다.
즉 농노들은 자유를 얻었으나 영주로부터의 보호는 사라져 경제적 위기에 처한 농노들은 구걸, 절도, 부랑자로 전락하게 되고 지주계급은 이들을 사회불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차라리 이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부리자고 정부에 요청, 노동법을 제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5) 이때당시에도 빈민구제 활동은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교회는 교리에 따라 자선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어 자선활동을 하긴 했는데 자선을 받는 사람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냥 빈민들은 구제불능의 나태한 자, 게으른 범죄자,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봤다.
*일할 능력이 있는 빈민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로 편입시켰다.
왜냐? 중상주의 시대라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흑사병과 자연재해가 돌아서 노동자들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1) 노동자 조례 Statute of Laborers 1349
-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부족 > 임금상승 > 임금을 낮추기 위한 지주들의 요청 > 노동을 강제 / 임금 상한성을 규정해서 일정 이상의 임금을 주지 못하게 막음
- 이 노동자 조례는 국가 입장에서 빈민보호가 아닌 상업주의에 지향된 정부 이익 보전을 위해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억압한 사례였다.
2) 노동자 조례 강화 1361
- 노동자들의 탄압을 더 강화시켰다. 오늘날에야 노동자조례같은거라 치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것들인데 이때는 노동자들을 탄압시키려고 한 것으로 일자리에서 이탈한 노동자에게 불신falsity의 표식으로 F낙인을 찍고 이탈한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에게 벌금을 매기는 등의 탄압을 하였다.
3) 빈민법 1388
- 노동력 이동이 가능하니깐 자꾸 임금 좋은곳으로 노동력이 이동해서 전체적으로 임금인상이 되네?
그래서 빈민의 주거이동 제한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더욱 억압하고 통제했다.
예를들어 허가증을 만들어 다른 지역에서 일하거나 여행가는것도 금지시켰다.
4) 걸인 부랑자 처벌법 1531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은 정해진 지역에서만 걸식하게 하고, 노동능력이 있는데도 구걸을 한다? 처벌했다.
5) 부랑자처벌 빈민구제법 1574
- 부랑자 처벌이 목적으로, 3일 이상 실업자를 부랑인으로 간주하고 부랑인을 발견해서 고발하면 고발자의 노예로 2년 or 종신노예 or 사형에 처했다.
- 또 노동을 거부하면 가슴에 인두로 낙인을 찍고, 부랑자의 자녀는 부모의 허가 없이 장인의 도제로 끌려갔다.
*일할 능력이 없는 빈민
일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 노인, 여성은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마녀사냥을 시켰다. 사회혼란의 원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1) 마녀재판
- 노동 무능력자에 대한 대처로 인간차별과 인간학대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 사회 불안의 원인을 가난한 미망인, 독거노인, 정신장애인 등과 같은 빈곤층 탓으로 돌려 공동체에서 배제 > 사회체제를 공고히 했다.
- 모든 사회혼란의 원인을 빈곤층에게 돌림으로써 지배층의 사회통합 수단역할도 되었다.
- 식량이 귀하고 식량 가격이 비싼 지역에서는 마녀 박해가 더욱 심해졌는데 마녀는 대부분 50대의 빈곤 독신 여성으로 이웃에게 걸식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한 빈곤층을, 거절한 사람이 죄책감에 마녀로 고발해서 조졌다.
마녀로 몰아가고 고발한 사람들은 모두 마녀보다 약간 더 살기 좋은 약간 상층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Key point : 특정 시대의 사회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대중들이 '빈민'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관점을 살펴보는것이 중요하다.